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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새(음악한곡의추억)

이장희 님의 창가에 홀로 앉아 생각이 나는군요! 김세웅 2001/6/29(금)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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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님의 창가에 홀로 앉아 생각이 나는군요!

김세웅

2001/6/29(금) 01:04


얼마전 우리가요 듣기를 접하다가 이장희 님의 노래를 듣다보니 지난일이 생각나서 몇자
적으려고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가난한 것에 대하여 먼저 적고 노랫말 쓸께요)
가난 (일)
저는 부모님께서 이북에서 피난 오셔서 피난민 들이 많이 사시는 해방촌 이라는 곳에
정착을 하여 그곳에서 오래 살았으며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많이 보냈는데 남산이 바로 앞이라
산에가서 놀다가 (그곳엔 옷나무가 많았슴) 옷나무에 옷 올라 오면 엄마 한테 욕(?)을 먹은
다음에 (그당시 옷 올라서 죽은 사람도 있다고하여)병원에 갈 돈도 없어 어머니가 시장에 가서
닭머리(닭머리에다 밑에 목이 조금 달려 있는것)를 한개에 10원씩 해서 한20개 를 사다가
끓여서 목에 붙어 있는 껍질로 몸에 돋은 부위에 바르고 목(?)부분 과 국물에다 밥을 먹는데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닭 벼슬 먹어야 남자는 출세(?)한다고 벼슬을 먹으라고 할때는 정말 
죽(?)을 맛이였지요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진짜 아무맛도 없는것을 어머니가 
화내실까봐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지금 이시간까지 온 것은 어머니의 닭 벼슬 덕(?)
이라  생각이 드네요!! 껍질을 바르고 나면 꾸득꾸득(?) 마를 때쯤 가려워서 긁으면 피가나고
그려면 어머니 한테 혼나고 계속 반복되고.....
가난(이)
제가 중학교 이학년 때부터 고이 때 까지 아버님 께서 집에서 쉬(?)셨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었는데 지금기억에 중3때였는데 그날 체육시간이 있어 체육복을 가지고 가야되는데
살돈이 없어 학교에 그냥갔더니 (그당시 체육복은 뒤집으면 청색 다시바꾸면 백색 이였음)
담임 선생님이 운동장에 나오지말고 교실에서 도시락 지키(?)라고....조금은 어린 마음에 
창피도 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더군요  저의 작은 아이가 지금은 대학생인데 
마찬가지로 중2때 체육복 산다고 하여 (값이8800원) 제가 하는 말이 아빠는 체육복 값
220원이 없어 체육도 못했다고 하니까 저의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왜! 할머니가 체육복 
안 사주었냐면서 .... 고개를 한번 젓고 가길래  지금 애들은 먹을것이 있어도 내(?)켜야
먹으니 지난날 과 비교(?)가 많이 되더라구요!!
제가 왜 가난 이야기를 먼저 적었냐 하며는요!!!
학교 다닐때 좋아 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서로 좋아하고 좋은 시간도 많이 가지곤 했는데
어느날 갑지기 이상해 지길래 (만났는데 별로 대화없이 서먹하였음)나중에 그친구한테
물어 보았더니 헤어지는 이유가 자기가 가난하기 땜에 남자가 가난한 것이 싫타(?)고...
그날 저녁 절교(?)장을 받는순간 아! 이젠 차(?)였구나 ...... 술이 취하고 싶어 가게로
가서 소주 한병을 시켜 양재기(?)에다 부었더니 하나 가득히 되어 한 반쯤 (쭉)먹고나니 
닭동(?)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그 가게 방안에서 이장희님의 (제목도 몰랐음)라이브로
노래가 나오더군요 그노래가 좀 슬(?)프 잖아요!  술을 한병 비우고 나서 그자리에서 엉-엉
소리내여 울었더니 그 주인님이 불쌍(?)해 보였던지 안주도 안먹은 저에게 라면을 하나
끓여주시더군요! 암튼 취해서 술값을 냈는지 안냈는지 잘모르고 가게를 나왔는데 
그다음날 집에서 일어나 보니 코 잔등(?)에 상처에다 무릎에 상처....그다음날 가게에 가서
제가 잘못이 있는지 사과드릴려고 가니까 아저씨가 놀리시더군요!!(소주 값은 냈다고 하심)
암튼 그후로 첫사랑은 잘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음      이하생략하고...
나중에 제목을 알았지만    창가에 홀로앉아  지금들어도 슬(?)프군요.....
또 재미 없는 글로 음악 한곡의 추억을 버(?)려 놓았군요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바람새 가족님들 !음악 사랑님 포함하여 계속 건강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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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2001/06/29[08:36] 
 저희집 애들아버지는 산 넘고 물 건너고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
다 .십리까지는 아닌 거리를 책보 메고 결석 한번 안하고 열심히 중학교 
까지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아들애가 5살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할아버지가 차로 태워다 주면 되고 아니면 자전거를 사 주면 되
는데 왜.. 라는 질문을 했어요 .요즘 아이들 모두는 아니지만 물질풍족시
대에 태어나고 귀한 것을 잘 모릅니다.또 부모가 어렵게 성장하여 무조
건 베푸는 경향이있는 탓으로도 보고 싶습니다.
눈물을 다 흘리시고 마음이 아픕니다.저는 .......^-^  
창가에 앉아 있는 분은세웅님?이신가요. 
세웅님도 건강하세요. 
 

기정수  2001/06/29[09:11] 
 안녕하세요 해방촌에서 사셨군요. 그곳에 사격장이 있어서
형들과 탄피를 줏으러 간적이 있지요. 저는 청파동에서 살았읍니다.  
 

정영희  2001/06/29[09:26] 
 60년대 끝자락...겨울...산동네 달동네...우리집...다 짓지도 않고...남은 
돈을 갖고 도망간 그 아저씨...유리도 창호지도 아닌 비닐 창문...비닐이 
바람에 떨며 울던 그 겨울 밤...너무 무서워...오돌오돌 밤을 새던...7살...
영희가 보여...목이 아픕니다.  
 

김세웅  2001/06/29[10:33] 
 기정수님! 해방촌에 사셨다니 반갑네요!
그 사격장에 타피 줏으로 정말 많이 다녔죠 헌데 그당시 오후 5시 반이면 
미군이 싸이렌을 울리며 나타 나잖아요! 그시간 이후에 그 사격장을
나가지 못하면 잡(?)혀서 미군부대로 끌(?)려가  미군이 얼굴에 페인트
칠을 하여 내보내곤 하였죠  큰 아이들은 빨리 나오는데 늘 잡히는 것은
조그만 아이들 이였죠  하여간 그때 생각하면 불쌍(?)하지요 뭐!!!!
아무튼 해방촌 이라니까 반갑네요!!!! 
 

강병주 2001/06/29[10:38] 
  세웅님의 그 시절이 바탕이 되서 오늘 날 근심없이 커나가는 아이들이 가난 걱정없이 잘 자라고 있는 가 봅니다. 너무나 리얼하게 잘 써주신 글을 보면서 우리가 불가 한세대 남짓 전에만 해도 어려웠던 과거를 잘 잊고 산다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세웅님 덕분에 부모님을 더불어 조상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건강하시고 애들도 훌륭히 커기를 바라겠습니다. 
 

낸시 2001/06/29[11:01] 
 그 사이렌 소리는 우리 동네에서도 들렸어요 .사이렌 소리 듣고  놀다가 
집에 가곤 했는데.. 저도 남산 밑에서 컸습니다.사격장까지는 무서워 못
가고 못 미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하며 엄청 뛰어 놀았습니
다 .사이렌 소리 지금 내 귀에서 들리는 듯 합니다 .집에 갈 시간을 알리
는 그 사이렌 소리가 싫을때도 있었어요...ㅎㅎㅎㅎㅎ 
 

낸시  2001/06/29[11:14] 
 사격장에서 잡혀서 울던 쬐그만 애가 저에요 ..... 얼떨결에 친구랑 같다 /가 ...그 뒤론 다시는 안 갔어요. 말 안할 려고 하니까 입이 간지러서 ..죄
송합니다 자꾸 왔다갔다 해서.....꾸벅 
 

김세웅  2001/06/29[11:14]  

 작은 철조망 구멍(?)으로 들어가서 탄피 한개라도 더 줏을려고 하다가
잡혀서....... 그때 생각 하니까  자꾸 눈물이 나오네요!!!! 죄송합니다 
 

기정수 2001/06/29[11:21] 
 김세웅님 해방촌과 땡땡거리는 당시 용산의 상징이었읍니다.
미군들한테 초코렛 얻어먹을려고 따라다니다 어머니께 혼난적이 있었죠.
작고하신  저의 아버님도 실향민으로  같은 정서가 느껴집니다. 
 

강남주  2001/06/29[11:26] 
 제가 젤 먼저 배운 영어가 'one dollar give me! 였어요.미군들 찝차 뒤 
쫓으며 뛰어가면서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한번 따라 가면 수확이 엄청 났어요.초콜릿,동화책,껌....
가루 우유를 먹을 줄 몰라 풀쒀서 도배하던 생각이 나네요... 
 

조재철  2001/06/29[16:33] 
 내다...
그렇게 어려웠던 어린시절이 있었기땜에 똑같은 조건의 현실일때
행복으로 오는 느낌은 남들보다 꼽배기가 되는거 아이가!!!
그러니까 마누라랑 토끼{큰토끼(?)}같은 두딸하고 재미있게
먼저 부모님께 감사하고 살아가라..월요일에 보자!!!
Have Nice Weekend!!!! 
 

조재철  2001/06/29[16:51] 
 내마음 이 자꾸 무거버진다 글 을읽고 또 일그니까.
김동환님 의 "묻어버린 아픔" 연속해서 다섯번 들어봐라!!!
느낌이 팍 온다..그 뭔지(?) 몰라도...알겠제
아직도 창밖엔 비가 내리고~ 
 

김인순  2001/06/29[18:31] 
 그 시절 도회지에선 초코렛 구경이라도 하죠.
시골에선 좀 산다고 해도 애들의 간식은 별도로 있는게 아니고 
봄이면 산에서 진달래 꽃잎 따 먹고 초여름이면 감꽃도 주어 먹지요.
볏짚에 하나하나 꿰어서 말려서도 먹고요. 
그리고 떨감이 밤톨크기가 되면 떨어지는게 있거든요 그것을 주워다
엷은 소금물에 삭혀서 먹던 기억도 나고요.
그것도 늦잠을 자고 나면 남들이 다 주워가고 없답니다. 그래서 자기전엔
항상 어머님과 약속을 하지요. "내일 일찍 깨워 주이소"
어머님께서도 깜빡 잊으시면 그날은 얼마나 서운한데요.
님들 글을 엿보고 나니 어릴적 생각이 문득 나네요.
우리 아들 역시 감꽃이 뭔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그런 추억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김덕수  2001/06/29[18:36] 
 1967년 종로무허가판자집(하꼬방)철거,한평남짓삭월세방한가족,종묘,비
원 담넘다 걸리면 청소한일....어렵지만 정넘치던 단칸방추억과 함께 내
리는 비소리가 어머니재봉틀소리처럼 들려오네요... 
 

김정수  2001/06/30[01:09] 
  정말 제가 경험한 듯 가슴 찡~한 이야기들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해방촌이라는 동네 이름,
아마 서울 수복 직후에 난민들이 주로 모여 생겨난 동네였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요즘 어린 친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뭐랄지... 한번은 조카녀석한테 옛날 얘기를
했더니 무슨 소설 쓰느냐는 듯이 쳐다 보더라구요. 참나... 
저는 세웅님과 같은 체험은 직접 못 했지만, 어릴 적 탄피가 박힌 팽이는 많이 보았지요. 
나무를 깍아서 중심에 탄피를 박은 거 말에요. 그 탄피가 세웅님과 기정수님이 주워오신 
거였던가요? ^^ 
 

김세웅  2001/06/30[09:27] 
 정수님!부모님 께서 실향민 이셨다니 부모님 모습이 떠오르네요!
영희님! 달동네 !말만 들어도 그리웁네요! 
병주님! 격려의 글 감사드리구요1
낸시님!우린(?) 탄피 동기(?)네요! 그사격장 에서 얼굴(?) 보았을지도 모르지요.....
남주님! 맞아요! 미군차가 지나가면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가 고작 한다는 말이 
쵸코렛 ! 기브(?) 미-----이이이이잉!!!! 그러면 미군이 불쌍(?)해 보엿는지 국방색(?) 깔의
봉지하나를 던져주면 좋아가자고.......
인순님! 추억이 소중하게 생각 되네요!!!!덕수님도 고생 많이 하셨네요!!!!
두분 정수님!!! 글 감사 합니다!!!!!
인순님! 추억이 소중히 느껴지는군요!
그리구 재철님! 어제 메일을 보니까 마음이 더 슬퍼 지더군!!!고맙다고 글 전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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