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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잊으리라' 홈지기 2000.1.12(수)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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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잊으리라'

홈지기

2000.1.12(수) 19:02


오늘은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이렇게 비가오는 겨울날이면 그리워 생각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김 정 호...


20년도 훨씬 전인 70대 중반, 주머니 사정이 좀 괜찮을때면 친구들과 어울려 즐겨 갔던 라이브 술집이 있었습니다.

종로2가 허리우드학원 부근 1층에 있었던 '봄'이라는 곳이었는데요...(우리는 '봄싸롱'이라고 불렀습니다) 통기타 가수들 나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 학생들에게는 꿈의 안주로 불리우던 동태찌개 한냄비가 500원 할 때인데, 그곳에서 가장 싼 '칵테일'(소주에 사이다 섞은 맛이 났음) 1인분이 700원인가 800원 정도였으므로 저와 같이 가난한 학생들은 큰맘 먹고서나 갈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날도 저는 친구들 몇명과 함께 오늘은 또 어떤 가수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벅찬 기대로 그곳에 갔습니다.

어느 무명 가수의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인 김만수씨가 김정호를 소개했습니다.

이름모를 소녀, 하얀나비, 꽃잎 등 그의 노래는 익히 들어서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은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소위 대마초가수로 방송출연은 전면 금지됐었지만, 업소 출연은 가능했나 봅니다.


김정호가 통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체구는 생각보다 아주 작았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에서 김정호가 노래를 부르는 곳까지는 2미터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그의 노래가 시작되고, 난 완전히 얼이 나간 사람처럼 그의 노래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잊으리라 잊으리라 미련없이 너의 모습 잊으리라...'

그는 목으로도, 배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혼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러다가 그의 모든 혼이 몸속에서 다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 김정호!

몸이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대마초 가수로 많이 고생한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저런 힘과 열정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저는 노래가 다 끝났는데도 박수치는 것도 잊은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김정호를 좋아하다 못해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이던, 음악다방에서든, 레코드 판으로든 그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특히 '잊으리라'를 들을때면 그가 바로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김정호는 나중에 무교동 초입에서 그가 부른 노래 제목을 딴 '꽃잎'이라는 경양식집을 운영했습니다.

전 그저 김정호가 좋아서 용돈을 아껴서 그곳에 자주 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후 85년 겨울이 막 시작될 즈음, 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방송에서 그의 요절 소식을 듣고 저는 너무나 안타까워 몇일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잊으리라 잊으리라 미련없이 너의 모습 잊으리라...'

그러나 이 노래를 들으면 들을 수록 오히려 그를 더욱 못잊게 됩니다.


김정호 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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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blue  2004/01/03[20:34] 

 김정호...  우리 세대가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죠...   그는 정말로 보석같은 존재였습니다. 

 

동남풍  2004/05/06[05:29]  

 작년 청개구리 "추모 김정호 콘서트" 가 생각 나는군요!김정호 사후 처음여는 콘서트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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