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나(1) '꽃동네 새동네' 무슨달 2000.5.4(목) 05:58

바람새(음악한곡의추억)

노래와 나(1)

꽃동네 새동네 

무슨달

2000.5.4(목) 05:58


                           노래와 나(1)


  내게는 아주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이 있다. 진정한 벗이기도 하다. 그와 술잔을 기울일 때 가끔씩 내가 옛생각에 잠겨 지나간 일들을 그리워하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 향수에 젖는 건 육십은 넘기고 해야지 이제 나이 한창 때 그래애?” 그럼 난 웃는다. 육십이건 사십이건 지난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들처럼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만큼이나 아름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착각일까?)


  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것은 지난 일들을 아주 시시껄렁한 것까지도 잘 기억해내는 버릇이다. 기억을 버릇이라고 하는 이유는 잡념이 많다는 말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감탄하는 내 기억력(몇 년 사이 내 기억력은 완전히 쇠퇴해버렸지만)은 아이큐 덕이 아니고 순전히 종종 옛날 생각에 빠지는 버릇 때문이다. 정말 주위의 친구들은 내 기억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들마저 야릇한 향수에 젖곤 했다. 그러면 술은 더 맛있고 입가에는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처럼 “그때가 좋았어.”한다.


  내가 처음 노래를 만난 것은 언제일까.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도 보통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송아지나 학교종이나 그런 노래를 배웠음직 하건만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아버지가 가끔 부르시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라는 곡조가 떠오를 뿐이다. 지금의 중앙대학교인 검은 돌 부근, 그러니까 아.. 거기.. 그 앞에 뭔가 이름 있는 사람들의 묘소가 있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지금의 국립묘지에서 한강 다리로 지나가는 길에  허름한 선술집이 있었다. 어느 늦은 저녁날 아버지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아버지는 친구 분 여럿과 함께 드럼통으로 만든 연탄불 화로 위에 고기를 구워 안주를 삼아 술을 드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내게 그 맛난 고기를 먹이시려 했던 것 같다. 그 맛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지글지글 그 고기를 맛보던 때의 설레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돌아오시는 길에 아버지는 내 손을 꼭잡고 걸으시며 낙화유수를 부르셨다. “이이 가앙사안 나악화아유우수 흐르는 무울에~.” 이젠 낙화유수처럼 아버지도 오셨던 곳으로 되돌아 가셨다. 큰 형도 작은 형도 누나들도 모르는 아버지의 십팔번을 그래서 나는 알 수 있었다.


  국민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 무슨 노래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흔히 부르는 동요였다.) 입학식날 우리 코흘리개 꼬마들은 하얀 손수건을 옷핀으로 꼿아 가슴에 달고 운동장에 모여서서 선생님이 불러주는 그 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다. 숫기가 없던 나는 아이들이 하는 동작을 더 많이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넙죽넙죽 시키는대로 잘 따라하는 아이들이 우습기도 했다.


  국민학교 때 내가 좋아했던 노래는 오학년 교과서에 나왔던 <누나>, 또 라디오 방송에서 저녁마다 들을 수 있었던 <뜰 아래 반짝이는 햇살같이, 창가에 반짝이는 별빛같이, 반짝이는 마음들이 모여 삽니다. 오손도손 속삭이며 살아갑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중략. 꽃동네 새동네>이다. 초록빛 바닷물도 무척 좋아했다. ‘꽃동네 새동네’나 ‘초록빛 바닷물’은 커서까지 좋아 했는데 이상하게도 ‘누나’라는 곡은 자주 부르지도 않았건만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누나하고 손잡고 함께 거닐던 오솔길, 시냇물~> 국민학교 때 난 단조풍의 이 노래를 가끔씩 흥얼거렸었다. 난 누이가 두 분 계셨었는데 큰 누이는 일찍 시집가서 거의 볼 수가 없었고 작은 누이와만 오래 지냈다. 후일 작은 누이도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지만… 작은 누이와 나와는 나이차이가 거의 십오륙 년 났다. 그런데 나는 못된 막내 동생이어서 누이와 가끔씩 싸우기도 했다. 누이와 나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누이가 늘 아팠었기 때문인가 보다. 누이는 언제나 기침을 했고 좀 신경질적이었다. 누이는 참 예뻤다. 언젠가 신문에 기침약 광고가 나왔는데 보자기(용어가 생각 안남 스카프라고 했나 그 당시도?)를 세모지게 반 접어 머리 위에 쓰고 턱밑에서 묶은, 단추가 큰 바바리를 입고 기침을 하는 여자의 사진이었다. 어쩌면 누나를 찍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정말 흡사했다. 하단 통광고였는데 그 사진은 좌측에 있었다. 누이는 정말 예뻐서 어쩌다가 한강 유원지(그때는 한강에 놀이배들도 많이 떠다녔고-술취해 기생이 쳐주는 장구 장단에 맞춰 한량들이 노래를 불렀다.- 모래사장에는 아주 높다란 그네도 있었다.)에 갔다 돌아올 때면 총각들이 집까지 종종 따라왔다. 어떤 이는 근 두 달인가를 누나를 찾아왔다. 편지를 전해주고 오원을 받은 기억도 난다. 커서도 어니언스의 임창제가 부른 ‘누나’라는 곡을 들으면 첫 눈 내리던 날 창밖을 보다가 “누나 눈와!”하고 소리치다가 ‘누나’와 ‘눈와’가 발음이 똑같아 영문을 몰라하다가 깔깔 웃던 누나가 생각난다.


  너무 할 이야기가 많아서 어디서 어떻게 끊어야 될지 모르겠다. 나중에 내 홈에도 써넣어야지. 다음 이야기 기다려주세요. 히히(난 나이 먹고도 이런다. 주책없는 나를 이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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