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71년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른 학교 같은 학년의 여학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안 보면 뭔가 잃어버린 듯 허전한 느낌을 지우지 못해 매일 만났습니다. 비오는 날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눈 오는 날 밤은 시골의 어두운 갯가를 무서움도 모르고 눈 맞으며 쏘다녔습니다. 아무거나 같이 먹으면 맛 있었고, 어떤 음악이라도 좋았습니다.
(2) - 73년도 그러다 대학입시에 낙방하던 날 나는 모두 잊고 싶어 여인숙에서 수면제를 세 알 사 먹었습니다. 죽으려고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 애는 나중에 왔는데 말 소리는 어렴풋이 들리지만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애는 그렇게 있다가 내가 완전히 잠든 후 집으로 갔습니다. 다음 날 깬 다음 다시 와 둘이 안고 무척이나 울었습니다.
(3) - 76년도 나이가 들어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가기 전에 그 애는 나에게 구리반지와 LP판을 하나 사 줬습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반지 보며 잊지 말라고..... 그 애는 그 때 백수였기 때문에 좋은 반지는 못 샀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값이 문제가 전혀 아니었지요. 군대가기 전까지 그 판을 수십 번 들었습니다. 그 판은 두엣 '둘 다섯'의 '일기'였습니다. 그 구리반지는 훈련소에서 잃어버렸습니다.
(4) - 79년도 군대를 마치고 집에 와서 그 애를 찾으니 이미 결혼해 꼬마가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군대에서 편지 한 번 안해 줘 기다리지 못했다고 오히려 나를 원망했습니다.
(5) - 80년 대 얼마 후 우연히 길에서 그 애를 다시 만났습니다. 어린 아들과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혼했다고 합니다. 연애할 때의 잘 해 주던 내 생각이 나, 지금의 남자와 비교되어 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그 애를 보지 못 했습니다.
(6) - 지금 지금도 그 판은 가지고 있고, '일기'를 들으면 중년이 되어 있을 그 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잊을 때도 된 아주 오래된 옛 날 얘기가 오늘 따라 가슴 저리게 합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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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2001/06/27[23:24] 안녕하세요? 호영님 가슴아픈 추억이군요...그분 생각날때마다 이 노래를 듣겠군요. 자주 바람새방에 놀러오십시요...위안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정수 2001/06/28[00:37] 짧지만 긴이야기 이군요. 자주 오세요.
살살이가 2001/06/28[11:25] 저 한테도 이런 추억이 있습니다. 결혼을 약속하면 꼭 그사람과 하는줄 알았습니다. 너무 어리석었죠. 지금은 그사람도 나도 가정을 꾸미고 있습니다. 서로 통화는 하고 있지만 선뜻 만나기는 용기가 나지안아요 저 잘하고 있는거죠.
강병주 2001/06/28[11:37]
그 분이 이혼을 했다니 저까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혼 사유가 호영님이 너무 잘 해주셔서 그랬다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잘 살고 계시길 기대나 해야 되겠습니다.
김현창 2001/06/28[23:44]
실연으로 인하여 밤새 배개를 적셔보지 않은 사람과는 ...소설같은 비련이군요.
류호영 2001/06/29[09:56] 살살이님 정말 잘 하고 있는 겁니다. 이미 지나 간 일에 미련을 두면 또 다른 슬픔이 생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