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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이 내게 가르쳐준 노래 '고향생각' 그리고 '떠돌이별'-. 박성서 2000/11/20(월)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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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이 내게 가르쳐준 노래

'고향생각' 그리고 '떠돌이별'-.

박성서

2000/11/20(월) 01:37


대부분의 다른 이들도 '똑같은 꿈'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꾸기도 할까?

내가 그렇다. 여러 번 같은 꿈을 계속적으로 꾸곤 한다. 

그 것도 무려 두 가지나 된다. 

  

그 중 하나는 대충 이렇다. 

-누군가 대문을 마구 두들긴다. 그래서 나가보면 동사무소 방위가 떡 버티고 있고 날 보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내민다. 군대 영장이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난 군대 제대한 게 이미 오래 전이라고 얘기해보지만 이 친구, 막무가내다. 요즘 법이 새로 바뀌었다나 어쨌다나-. 그 비슷한 것으로 제대 말년병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꿈도 있다. 제대 날짜만 숨막히게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제대 특명'이 내려온다. 악-! 헌데, 거기에 내 이름이 빠져 있다.

 '군대'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밤을 샐 수 있으련만 이런 꿈들은 정말이지, 식은 땀 나는 노릇이다.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 살던 집'에 관한 꿈이다.

내가 태어나 중2 때까지 살았던 '충주'의 그 집, 그러니까 그 집을 떠난 게 어언 3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대한 꿈을 꾸면 지금도 어김없이, 그 집이다. 여전히 나는 거기 살고 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그 집을 다시 '사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리곤 그리웠던 집, 여기저기 둘러보며 감격에 겨워하기도 하고 또 그 동안 낡았을 집 이곳 저곳을 수리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그 게 꿈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꿈을 계속 꿔본 경우도 있다. 

  

그 '어린 시절 나의 집'에 대한 '사무침'을 달래주는 노래가 내겐, '고향생각'이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한번 떠나 온 후에-'로 시작하는- 이 노래,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스페인 민요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내가 그 집에 살고 있을 당시) 이 노래를 처음 알았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갖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그저 좋군, 정도였을 성싶다.

그러나 이후, 이 곡으로 인해 가슴이 저릿저릿해왔던 경험은 적어도 네 번 정도는 되는 듯하다. 

  

첫 번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였다.

'저 새장에 새가 날 듯/곧 벗어 나오라-'

찬송가-, 장례식장에서 추도곡으로 부르는 이 찬송가를 듣는 도중, 가슴이 뭉클해오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옆사람이 울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한번의 기억은, MBC-TV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 였던 것 같다. 육영수 여사 장례 행렬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이 곡이 사용됐다. 어설픈 듯한 아코디언 연주가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 집을 떠나오면서 돌아본 그 '텅빈 집'의 느낌처럼, 지금도 그 아코디언 곡조가 선명하게 떠오를 때면 '고향집'의 풍경과 오버랩돼 마음 한켠이 스산해진다. 

  

비슷한 경험으로는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연주를 접했을 때였다.

('LOUIS ARMSTRONG & THE ALL STARS/SATCHMO 1950 AND MORE'-. 이 앨범에 이 곡이 뉴올리언즈 실황으로 담겨져 있다.)

워낙 나른하리만치 느리게 트럼펫을 불었기 때문에 처음엔 이 곡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허나, 트럼펫 선율만큼은 매우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변형된 연주 'FREE AS A BIRD'를 혼자 흥얼거리고 다니곤 했는데 한 순간 '전율'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자나깨나 너의 생각...'이라는 가사로 흥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곡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내 '고향'과 '고향집'을 부쩍 그리워하곤 한다.  

비록 스페인 민요이기는 하지만, 내 오래된 '향수'와 그대로 일치하는 곡이다. 사실 각 나라마다 전해져내려오는 옛노래들에는 놀랍도록 일치하는 멜로디가 많다. 오래 전부터 어머니들이 불러주던 '자장가'나 '새야 새야' 같은 곡조는 어느 나라나 거의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고향생각'-, 국내 가요로는 은희와 홍민이 부르기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이 곡에 갖고 있는 '내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나는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연주의 느낌(나른하면서도, 비장한-)으로 고향집에 대한 향수를 달래곤 한다. 

가끔 레코드 샵이라도 들릴라 치면, 스페인 민요 코너를 기웃거리며 음반들을 뒤적여 보기도 한다. 이 노래가 합창단에 의해 불려진 것은 혹시 없을까-하고. 그러한 곡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왠지 근사할 것 같다.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형, 아르카디오 (-던가?)가 죽으면서 흘린 피가 마을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다가,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어머니 우르슬라 발 앞까지 가 비로소 멈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순간, 우르슬라는 아들이 죽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무서우리만치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내 고향집'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한번 떠나 온 후에/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내 가슴에 사무쳐/자나깨나 너의 생각/잊을 수가 없구나/나 언제나 사랑하는/고향엘 다시 갈까/아, 내 고향 그리워라.  


내 어릴 때 살던 넉넉한 고향집-. 늘 다시 돌아가고픈 내 어머니 같은 곳, 

기억은 아직도 따듯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으므로 해서 나는 '원죄'처럼 슬퍼한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고향생각'만큼이나 내게 위안을 주는 곡은 우습게도(?) 윤항기의 '떠돌이별'이다. -'내가 울려고 하는 이 때에 거기서 누가 우느냐'-하는 폴 발레리의 시 '젊은 빠르끄'의 첫 귀절처럼, 매우 처절하고 청승맞은(?) 이 곡이 때로는 '울고난 뒤의 후련함' 같은 카타르시스를 주곤 했다. 그러고 나면 또다시 새 힘이 돋아난다던가...?  해서, 난 노래로부터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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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2001/05/09[01:14] 

 잠들지 못하는 밤에 게시판에 들럿다가 박성서님의 글을 읽고 공감을 느꼇답니다. 


김진희 2001/05/09[01:17] 

 떠돌이 별을 처음 듣는데 왜 이리도 마음이 아픈지요.

 이노래을 알게 되어 기쁨니다.

 

 감사... 2003/09/14[22:12]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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