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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새(음악한곡의추억)

<내나라 내겨레>를 들으며. 보배 2000/12/23(토)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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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라 내겨레>를 들으며.

보배

2000/12/23(토) 14:57


안녕하세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혹시 박성서님의 멋진 음주 기고가 올라오지 않을까 하여 새삼스럽게 접속을 하여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 보니 허성보님께서 텔레비전에서 빅4 콘서트 녹화방송중이라는 글을 막 올려주셨습니다. 부랴부랴 텔레비전을 켰고, 입을 헤~~ 벌린 채 끝까지 다 보고 잤습니다. 이럴 때, 허성보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박성서님께 감사 드려야 하는 건가요? 아무튼 두 분 모두 제게 공연 볼 기회를 만들어 주셨으니 무조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곡으로 부른 <내나라 내겨레>를 들으며 생각난 저의 '음악 한 곡의 추억'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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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한 것은 수습을 벗어나 얼마 안되어서입니다. 출장을 가더라도 처음엔 일본이나 동남아에서 시작해서 점점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는 게 저희 회사의 상례인데, 어쩌다보니 미국에서 중요한 일정은 잡혔는데 막상 출장을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무튼 제가 대타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비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시간은 급하고, 남아 있는 사람 중에 미국 비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고...


출장 명령을 받고 허겁지겁 보따리 챙겨서 비행기를 타야했습니다. 동행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홀홀 단신 혼자서, 그것도 첫 해외 여행을 하게된 것입니다. 

해외 여행, 혹은 외국에 대한 상식이라고는 어릴 때 열심히 보았던 이원복 선생님의 만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제가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비행기를 탔으니 그 때부터는 완전히 <좌충우돌 출장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출장은 저에게는 좋은 경험과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 당시로는 오로지 '상부의 가혹한 명령'일 뿐이었습니다. 아니, 황당했다고 해야 할까요. 약 일주일 동안 제가 해야할 일은 인터뷰 세 꼭지, 행사 취재 한 꼭지, 이에 더하여 윗 분의 개인적인 심부름 하나, 제 출입처의 미주 지사 방문 등 모두 여?건이나 되었으니까요. 그것도 아무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보따리를 챙길 틈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서 입을 정장 투피스 한 벌과 구두, 그리고 녹음기와 슬라이드 필름 몇 통, 카메라 정도만 챙기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구입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일단 비행기를 탔습니다.

아,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뭐 여행길이라거나 친지 방문 길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연륜에 걸맞지 않은 대형 취재를 하러 가는 길이니 비행기 안에서 잠인들 오겠습니까, 밥인들 넘어가겠습니까. 오로지 실수하지 말고 무사히 넘겨야하는데,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미국 국내선으로 다시 갈아타는데, 일기가 나빠서 연착한다는 공항 안내 방송을 못 듣고(처음 가는 해외 여행 중에 그게 들릴 리가 없지요, 당연히. 게다가 공항 안내 방송이라는 게 쩌렁쩌렁 울리고 에코가 많으니 더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비행기 타러 들어갈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말이나 통해야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기나 하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사표 쓰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제 임무가 모두 끝나고 출장지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습니다. 일단 별 사고 없이 일은 모두 무사히 마친 셈이고, 이제 남은 일은 서울에 가서 죽어라고 자판 두드리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이 한꺼번에 다 풀렸습니다. 그랬으면 얌전히 방에 들어가 잠이나 잤으면 좋을 것을... 


기어이 참지 못하고 호텔 아래층의 바를 찾아갔습니다. 자리를 잡고 데낄라를 주문했습니다. 우리가 잘 마시는 두꺼비 정도인 데낄라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서는 독주에 속한다더군요. 아저씨! 데낄라 한 잔 플리즈, 아이고 이걸 누구 코에 걸어.. 어쩌구 하면서 단 숨에 원 샷! 아저씨, 여기 한 잔 더 플리즈. 그리구 한 잔 더....  적어도 소주 한 병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마셔대던 가닥이 있어서인지, 서 너 잔 마시고 그냥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입맛만 버린거지.. 그래, 이왕이면 소주 한 병만큼, 그러니까 딱 여덟 잔만 마시자. 점점 주위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찔끔 찔끔 맛보며 먹는다는 그것을 저는 막소주 들이키듯 들이킨거죠. 


이 동양 여자, 야쿠자 캡틴의 여인인가? 왜 이리 겁이 없어? 하는 듯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유유히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로 순식간에 데낄라 여덟 잔을 마시고 레몬 조각으로 테이블 위에 해바라기를 만들어 놓은 다음, 그곳을 나와 방에 들어갔습니다.  6일 동안 영어만 듣고 살자니 입은 근질근질 한데 말할 사람도 없고, 영어로 수다 떨만한 실력은 더욱 안되고. 아무나 붙잡고 우리말로 뭔가 마구 떠들어대고 싶었습니다. 


그 때, 문득 입 속에서는 <내나라 내겨레>가 맴돌았습니다. 아마도 한국이 아닌 곳에 혼자 앉아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였을 겁니다. 술도 적당히(?) 마셨겠다. 일도 끝났으니 부담감도 없겠다. 냅다 소리소리 지르며 아랫배에 힘을 주고 <내나라 내겨레>를 목놓아 불렀습니다. 제가 뭐 애국자가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떠오른 그 곡이 그 순간, 그 곳에서 딱 어울렸을 뿐입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수다는 커녕, 마음 편히 소리도 못 내고 죽어지내던 압박감이 일순에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옆방에서 항의한다고? 할 테면 해보라지. 몇 번을 불렀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엉엉 울면서 불렀습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준비도 없이 출장 보낸 팀장이 야속했고, 자기 출장이면서도 개인적인 일을 핑계삼아 저에게 미룬 선배가 야속했고, 마음은 답답한데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우물쭈물 해야했던 제 자신이 야속했고, 난생 처음하는 해외 나들이인데 남들 다 한다는 관광지 여행 한 번 못해보고 일에 치여서 고생만 죽도록 하다 가야하는 제 처지가 야속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내나라 내겨레>를 들으면 당시의 가슴 속 깊이 치밀어 오르던 서운함과 황당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또한 외국에 나가면 버릇처럼 <내나라 내겨레>를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신혼여행 가서 첫 날 밤에 남편과 둘이 손잡고 바닷가를 누비며 <내나라 내겨레>를 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비록 녹화 방송이기는 하지만, 어제 텔레비전에서 들은 <내나라 내겨레>가 저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고, 또 그 느낌을 잊지 못해 이렇게 바람새 게시판에 구구절절 늘어놓았습니다.  

좀 더 써야하는데, 급한 일이 생겼군요. 기회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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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바람새님. 이런 내용의 글은 자유 게시판으로 가야하나요? 음악 게시판으로 가야하나요? 아니면 음악 한 곡의 추억으로 가야하나요. 도무지 잡글이다 보니까, 소속이 불분명하네요. 아무튼 게시판 취지에 맞지 않으면 바람새님께서 아무 곳이든 적당한 곳에 이사 보내 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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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달 2000/12/23[16:06]  

 야꾸자 오야지의 여인. 역시 거물이였군요. 제가 시네마천국 담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대부인 걸 생각하면 오야지의 여인에 대한 우러름도 당연. 근데 약올르네요. 케비에스 가서 돈주고 녹화 떠야겠네요. 쫌 있으면 음반도  나오겠죠? 신혼 첫날 밤 아저씨랑 비장하게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에서 훤히 비추나! 찬란한 선조의 문화 속에!" 이러셨드라면 더 멋지셨을 듯. 아드님은 틀림없이 민족의 대들보가 되실듯! 


무슨달 2000/12/23[18:40]  

 제가 조직 출신이 아니라 노가다 출신이라 오야붕을 오야지라구 그랬네요. 오야붕께 지송. 


강병옥 2000/12/23[18:41]  

 보배 님!! 커리어 우먼 부러버라!!! 


박성서 2000/12/24[01:04]  

 묘지 위에서 불타던 태양이, 이윽고 동해로 떠오른다는 이 노래... 글을 

읽다 보니 김민기와 송창식, 그리고 보배님까정 내 나라, 내겨레임

이 가슴 벅차도록 좋네요. ...지 역시 듣는 것보다 부를 때 더 좋더라구

요. 음치지만-. (바쁜 일 끝나셨남유? 빨리 이 글, '마감'시키세용!)

 

김철홍 2000/12/24[12:51]  

 갑자기 제 아이디가 생각납니다. 처음 대화방에 들어가서 독수리라 핀잔이많더군요.. 해서 아이디를 독수리로 나가다가 또 너무 촌스럽다고 말이 나와 '이글'로 바꾸었습니다. 했더니 영어 쓴다고 뭐락카대요.. 해서 '내나라 내겨레' 가사가 떠오르더군요. '이글거리나'로 나간적이 있습니다. 아! 유치찬란한 아이디..요즘은 실명 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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