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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새(음악한곡의추억)

'아기와의 첫 만남 What a Wonderful World' 보배 2000/10/1(일)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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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의 첫 만남 

What a Wonderful World

보배

2000/10/1(일) 05:12


'음악 한 곡의 추억' 행렬에 동참하기 위해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등학교때 부모님 속이고 남학생들이랑 캠핑 갔던 낙산 해수욕장 ... <화>

전주만 나와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유라이어 힙... < sunrise > 

1학년 개강 파티에서 찍은 선배를 3년간 노리다가, 

3학년 축제 때 기어이 얼싸안고(?) 처음으로 블루스를 추던 곡...< For the good times >

가슴속에 뿌리를 내려 열매까지 맺어버린 잊을 수 없는 <불나무>.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 제 손끝에서 맴도는 곡은 < What a Wonderful World >입니다.

해서, 오늘은 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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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 What a Wonderful World > 풍의 노래를 좋아하거나, 깊은 추억을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3년 전 까지는요.


결혼이 남들에 비해 상당히 늦었던 만큼, 당연히 늦은 출산을 하게되었습니다.

게다가 왕년의 음주 전력이 화려한 지라, 37살에 첫 임신을 하고 보니 겁이 덜컥났습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일찍 결혼할 걸..에서부터, 뭐 좋은 것이라고 술을 그렇게 마셨었나..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서 '나이가 많지만 몸이 건강한 편이라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임산부의 음주가 태아에게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끊은 지 1년 이상 되었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다소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고 이른바 태교에 전념했습니다.


다른 산모들은 태교 음악을 듣는다, 십자수를 한다, 뜨개질을 한다 등등 여러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저는 당초부터 십자수나 뜨개질과 같은 분야에는 거리가 멀고, 억지로 하다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을 것이 분명하므로 오로지 명상, 아기와의 대화, 그리고 영어 책 한 권을 골라 머리말에서부터 참고 문헌에 이르기까지 통째로 번역을 했습니다(머리를 쓰라는 말이 있기에).


임신 5개월 무렵, 라마즈 분만을 받기 위해 교육 신청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라마즈 분만이란 남편과 같이 분만실에 들어가, 함께 익힌 호흡법과 몸동작으로 분만을 보다 수월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임신 5개월에 남편과 산모가 약 한 달간 교육을 받고, 그 과정을 거친 산모와 남편은 함께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 교육 신청 사인을 받기 위해 종이를 내밀었더니 선생님께서는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며 ' * * * 씨, 이 나이에 초산이면 굉장한 노산인데 자연분만 할 수 있겠어요?' 하시며 '수술합시다'라고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 분만을 시도하다가 황망 중에 수술을 하거나 아니면 태아나 산모에게 특별한 이상이 있어서 미리 수술을 결정하기 때문에 갈등이 없겠지만, 적어도 저는 온 몸을 마취하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아기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내는 첫 울음 소리.. 그건 꼭 제 귀로 듣고 싶었습니다. 아기 얼굴도 처음으로 봐야겠구요. 아들인지, 딸인지, 어디 이상은 없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술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다음 검진에 가서 불만을 이야기 했더니 선생님께서 살살 꼬시(?)더군요.

' * * * 씨, 수술을 할 때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마취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 번 해보시겠어요?'

저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고 했지요. 남편은 '이 사람 무서운 사람이네, 아니 어떻게 두 눈 다 뜨고 맨 정신으로 자기 배를 가르는 걸 보겠다는 거야? 창자도 보이고 피도 흐를텐데, 그러다 놀래서 기절하면 어쩌려구' 라며 걱정했습니다. 그 이후 제게 붙여진 별명은 '깡다구 여사', 혹은 줄여서 '깡여사'가 되었습니다.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중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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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운 10개월이 다 지나고 출산을 위해 수술실로 실려갔습니다. 약간 쌀쌀한 듯한 온도에 소름이 돋기까지 하며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뭐, 선생님들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일이 산모 배 가르는 일인데 긴장까지야 안하셨겠지만 저로서는 초긴장 상태였습니다) 수술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수술실에 음악이 흐르더구만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이 중요한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들어? 이거 너무하잖아? 궁시렁 궁시렁... '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술할 때에는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하더군요)

때마침 < Seasons in the Sun > 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좋은 노래 많은데 왜 하필 이 노래야, 너무 음산하잖아... 자살 이야기라는데... 에이, 매너 없는 사람들... 수술실에서 이 곡을 듣냐?  궁시렁 궁시렁... '  


의사 선생님들이 무척 친절하셨습니다. 마취 선생님, 집도 선생님, 수련 선생님들까지. 

이전에 제가 들은 바로는 애 낳으러 들어가서는 산모들이 무지하게 구박받는다고 하던데 저는 매우 친절하신 선생님들 덕택에 점점 긴장이 풀려, 급기야 머리맡에 대기중인 마취 선생님과 농담 따먹기(?) 수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그러나 마취할 때는 고통과 두려움에 엄청 소리질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허리 마취를 하고 드디어 배를 가르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찌이익~~~~ ' 

믿거나 말거나 분명 제 귀에는 터질듯한 만삭의 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 마치 생살을 찢는 듯한 느낌이예요오오....'

'안그래도 지금 생살 찢고 있습니다'

(속으로) 오오.. 우문 현답이 바로 이런거구만...


머쓱해진 저는 그때부터 머리맡의 마취 선생님과 하던 농담 따먹기를 그만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기를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아기를 꺼내는 순간, 밀려있던 내장이 자리를 찾는 느낌으로 인해서 그 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주해진 간호사의 동작과 함께 '응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귀에 들어오는 음악 소리, < What a Wonderful World > 였습니다. 


저는 그 때의 그 기분, 그 노래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아기가 처음 듣는 음악이 아까 그 음산한 노래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리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아기에게 들려주는 기분으로 그 곡을 따라 불렀습니다. 

가사를 아는 부분은 가사대로, 모르는 부분은 그저 신음 소리에 가까운 허밍으로.


아기의 얼굴을 보고, 손가락 발가락을 확인하고(만약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사물을 보고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기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 엄마는 에어리언인가? 왜 배는 갈라서 창자를 다 끄집어내고 저러고 있을까...) 아기는 제 눈앞에서 간단한 처치를 마치고 아빠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 다음부터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더군요. 문득 '혹시 지금 전쟁이 나면? 정전이 되면? 이 사람들 내 배 갈라놓은 상태로 다들 도망갈까? 그럼 나는?' 등등 온갖 방정맞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잡념을 없애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역시 가사를 아는 부분은 가사대로, 모르는 부분은 허밍으로. 배에 힘을 줄 수 없으므로 아주 작은 소리로 거의 입만 움직이는 수준이었지만요. 


그 와중에 한 수련의가 이야기합니다. '아주머니, 음악 좋아 하시나봐요. 모르는 곡이 없이 다 따라 부르시네요' 저는 다시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난들 지금 이 상황에서 노래가 부르고 싶겠냐. 당신들이 내 배 꿰매다 말고 도망갈까봐, 그게 무서워서 긴장 푸느라고 이러는 거다.' 그 때 나온 곡들이 대부분 올리비아 뉴튼 존, 로보, 쟈니 허튼 등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보다 서너살 위로 보이는 집도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곡이겠지요.


퇴원 후, 저는 아기에게 < What a Wonderful World >를 무척 많이 불러주었습니다. 

요즘도 아기가 잠투정을 하면 자장가 메들리와 함께 이 곡을 불러줍니다.

때로는 감미로운 짐 리브스 버전으로, 때로는 다정다감한 헬렌 레디 버전으로, 때로는 목에 반쯤 가래가 걸린 듯한 루이 암스트롱 버전으로, 그리고 또 때로는 가래가 걸린 상태에 더하여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김상국씨 버전으로...


남편은 이런 저를 보면서 말합니다.

'노래 한 곡 가지고 원맨쇼를 하는구만...  그거 가지구 개그맨 컨테스트 나가면 일등 먹겠다'


아기는 오늘도 네 명의 가수가 뒤섞인 제 엄마 버전의 < What a Wonderful World >를 들으며 무럭무럭 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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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근 2000/10/03[20:59]  

 본문을 열자마자 리얼플레이어 음악이 뜨게 하려면 어떤 태그를? 


홈지기 10/04[07:25]  

 연주하려는 리얼오디오 파일 주소가 www.abc.com/lalala.wma 라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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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주재근 2000/10/03[22:04]  

 보배님은 제 상상으로는 슈퍼 캐리어 우먼 이즌 잇? 


김병완 2000/10/30[15:01]  

 지난 전국체전으로 부산에 갔을 때 김상국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보배님께서 부르시는 김상국 버전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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