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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 장윤석 2000.6.25(일)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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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

장윤석

2000.6.25(일) 21:03


  여기는 정말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곳입니다. 제게도 말입니다. 아마 여기 홈지기님이나 자주 들리시는 분들의 옛날보다는 제 옛날이 더 옛날일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더 어렸을 때일거니까요. 제 농담 잘 이해되시죠? 

  이 곳은 70년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 많이 오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70년대초를 중학교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70년대초에 제겐 엄청난(?) 일이 두가지 벌어졌는 데, 그 중 하나는 '이소룡'이라는 배우가 한국에 알려졌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지금도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는 데 주저하지 않고, 이소룡이란 사람을 집어 넣습니다. 근데 이 얘길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음악에 대한 부분만 얘기하겠습니다. 전 그 사람을 좋아해서 그 사람이 주연한 영화중 '용쟁호투(Enter the dragon)'의 주제가가 담겨있고, 앨범(LP) 쟈켓에도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나와있는, 그리고 4채널이라는 단어도 같이 보이는 그런 앨범을 거금 1300원을 투자해서 구입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앨범 수집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앨범은 남아있지만 소리는 떠나 버린 것 같은 데, 그 때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선합니다. 우리집 오디오는 별로였지만 그 소리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희안한 소리라고 생각해서 학교만 다녀오면 그 앨범을 거는 것이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LP 1000여장을 모으게 되었는 데 이리 저리 다녀오다 보니 지금 남아있는 것은 한 500여장 정도입니다만, 음악을 항상 제 곁에 있게 만든 사건이었지요.


  그리고, 또 하나가 '바보들의 행진'이었는 데, 중학교때 뭘 제대로 알았겠습니까만, 전 그 영화를 이 친구, 저 친구 데리고 다니면서 4번이나 보게 되었습니다. 암만 봐도 물리지 않을 것 같았고, 뭔지 내게 막 전해지는 걸 느꼈던 겁니다. 병태와 영자가 뽀뽀하는 마지막 신에서 흐르는 '날이 갈수록'은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잘려서 그랬지만 영철이 자살하는 신에서 흐르는 '고래사냥'도 정말 고래잡으로 막 뛰어가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제일 좋아하던 가수가 송창식이었기 때문에 그 새로운 가사의 시작이었던 '왜불러'에다가 그냥 instrumental로 흐르는 '날이 갈수록'까지 '바보들의 행진'의 감동은 그 음악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쨋든,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나서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으로 매일 밤에 친구와 같이도, 혼자서도 가로등 사이를 많이도 걸었습니다. 겨우 중학생이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마 인생에 대해서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포장마차도 들어가서 차마 아저씨들 앞에서 소주 한잔 할 수는 없고, 이상한 눈길을 애써 피해가면서 철사꼬쟁이에 찔러넣어서 구운 닭고기가 얼마나 맛있는 지 알수 있었던 때도 그 때 였습니다. 지금도 케이블 채널에서 녹화한 것을 소장하고, 심심하면 보기도 합니다만, 결국 최류탄과 막걸리, 소주로 시작하고 마쳐졌던 대학생활이 이미 그 때부터 시작되었는 지도 모릅니다. 


  가을 잎 찬 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밭엔, 또 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정말 그 가사같이 잊을 수 없는 얼굴, 머물 수 없는 시절, 꽃이 지고, 가을 가고, 세월 가고...  

  그 영화는 갈수록 또 보고 싶었지만, 금지곡에 금지장면까지 끼어 있어서 전혀 볼 기회를 주지 않더니, 대학 졸업한 다음에야 근근히 다시 한번 볼 기회를 잡았습니다. 흐름한 극장에 혼자 앉아서  다시 보고 일어서서 나오는 데, 얼마나 서글픈 맘이 확 밀려오는 지, 그 날도 한잔하고야 말았던 게 기억납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처음 만난 병태는 나의 미래 같아 보이더니, 대학시절엔 그 병태가 바로 내 안에서 늘 어슬렁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지나간 내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태는 내게 피터 팬과 같이 늘 그 나라에 그대로 존재하는 청년 같습니다.

  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포크음악을 좋아했고, 좋아할 겁니다. 제가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어린 중학생에게 대학시절을 미리 보여주고, 미리 들려준 '바보들의 행진'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음악 면으론 전 준비된 대학생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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