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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새(음악한곡의추억)

'아래 서울 하늘님의 글을 읽으며.' 보배 2000/10/6(금)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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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서울 하늘님의 글을 읽으며.

보배

2000/10/6(금) 06:42


참 이상하네요.


며칠전, 4월과 5월의 <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니까 바로 몇 시간 전에 김병완님께서 올려주셔서 다른 이야기를 썼는데, 오늘은 고고장 이야기를 쓰러 왔더니 서울하늘님께서 고고장 이야기를 올려주셨네요.

제가 쓰려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서울하늘님 글을 읽고 생각난 고고장 이야기 약간만 써보겠습니다.


서울하늘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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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주로 찾는 분들께서는 저보다 연배가 위이신 분들이 많으니 길게 설명할 것도 없겠지만,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그룹 사운드의 연주를 직접 볼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비디오가 흔했습니까, 레이저 디스크가 있었습니까, 그렇다고 요즘처럼 하루 종일 음악만 나오는 케이블 티비가 공급되지도 않았고, 흑백의 공중파에서는 더더욱 그룹 사운드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주로 대학의 그룹사운드 발표회를 찾아다녔습니다. 


드라마 센터에서의 샌드 페블즈 공연을 비롯, 서강대 킨젝스, 연세대 후저스(아는 사람만 아는), 건국대 옥슨, 동국대 화이트 엘레펀트, 고려대 공대 옥타곤인가 펜타곤인가...


아무튼 그 당시 해당 공연을 보신 분 중, 교복을 입은 얌전하게 생긴 참한 여고생이(이 역시 믿거나 말거나) 친구도 없이 혼자 와서 생김새와는 달리 꽥꽥 소리지르고 코마 상태에 빠지다가 공연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신한 발걸음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본 분이 계시다면, 바로 그 여고생이 저랍니다. 저요.


제가 대학 공연을 찾아다닌 이유는 단 하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그룹 사운드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단골 레퍼터리들이 맨프레드 맨 밴드와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피와 땀과 눈물이 뒤범벅된 블러드 스위트 앤 티어스, 부커티 앤 더 엠쥐스(이거 한글로 치다보니 모양이 참 이상하네요) 등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입학을 하자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가슴이 벌렁 벌렁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방? 술집? 남자 친구?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고고장에 가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그룹 사운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서울 하늘님과 비슷하게 남들 몇 년에 할 것을 서너달 만에 다 해치웠습니다.

명동 마이하우스, 청계천 팽고 팽고, 무교동 코파카바나, 낙원동 낙원 회관, 종로 3가 .. 거기 이름이 뭐지요? 국일관이었나? 2층에 있는 거요, 집 앞에 있던 하이 소사이어티(요긴 좀 나중에 생겼습니다만), 신촌 우산속, 충무로 고인돌인가 석기시대인가..  등등


나중엔 좀 민망하더군요. 딸 많은 집 부모님의 걱정 아닌 걱정으로 인해 딸들의 통금 시간이 9시로 묶여있던 시절이라, 저는 주로 사람이 없는 초저녁부터 가서 진을 치고 앉아 있었거든요. 그 시간에 가면 엊그제 본 사람 또 봅니다. 서로 민망하지요. (혹시 그 사람들 중에 서울하늘님이 계셨을 지도... 아니 연배가 위이시니 그럴 가능성은 없겠군요)

사랑과 평화... 대단했습니다. 또 필리핀 계열 사람들로 보이는 밴드도 있었고, 들고양이, 이치현과 벗님들..이 기억납니다. 

블루스 곡으로는 <원더풀 투나잇> <쓰리타임스 레디> 그리고 가능한한 지익 지익 늘려서 부르는 <포 더 굿타임스> 등이 자주 나왔습니다. 


1학년 초에 그렇게 음악을 들으러 고고장엘 다니다가, 한 동안 고고장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3학년 2학기때, 왕년의 댄싱 퀸의 면모를 과시하며 이제는 고고장이 아닌 디스코 테크를 활동 무대로 주름잡은 바 있습니다. 


무대가 명동, 종로, 신촌에서 강남으로 옮겨졌지요.

생음악 대신 음반을 틀어주는 경우가 많아졌고, 춤도 고고춤은 휴가 나온 군인이나 구사하는 구닥다리 춤이 되어 버렸습니다. 디스코를 추어야지요. 단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라면 문닫을 시간이 되면 조명이 점점 밝아지면서 어김 없이, 어느 업소에서나 틀어주던...

(여기까지 이야기 했는데 어떤 곡인지 아시는 분들은 왕년에 한 춤 하셨던 분들입니다.)


'빠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여기까지 읽고도 윤형주씨의 <미운 사람>을 떠올리신다면 고고장과는 아주 거리가 먼 분입니다)


3학년 무렵에는 어머님의 귀가 시간이라는 게 유명 무실 해 질 정도로 저의 머리가 커진데다가 집이 근처라서 까짓거 차 떨어지면 걸어가지... 하는 배짱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문닫을 때까지 버티다 왔습니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학생들의 공연은 강당이나 뭐 그런 곳에서 하기 때문에 사운드도 좋지 않았고, 연주도 각자 따로 노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때는 드럼 소리만 크게 들리고 어떤 때는 소리가 다 뭉치고 했는데 역시 프로들의 무대인 고고장은 다르더군요.

특히 싱어의 역량이 확실히 차이가 났었습니다. 


아... 당시의 고고장의 분위기와 음악을 재현하는 40대 전용 고고장 어디 안 생기나요?

그럼 저는 정기 출입증, 아니 회원증 끊어 가지구 매일 가서 펄펄 날뛰다 올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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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새님. 이 글이 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으면 죄송하지만 자유 게시판으로 옮겨주세요.

어디에 올려야 할 지 망설이다가 이 곳에 우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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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완 2000/10/06[10:29]  

 국일관 2층에 처음에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얼마 후에 '디스코리아'로 바꿨던 것 같네요. 


보배 2000/10/06[14:42]  

 맞다! 맞다! 나중에 디스코리아로 바뀐 집 그집 맞아요. 이걸 기억하시다

니.... 그럼 김병완님도 왕년의 '한 춤' 멤버?  

그 곳은 시설이나 분위기는 좀 떨어졌지만 여자 싱어가 가창력이 아주 대

단했었습니다. 저 그 언니 나오면 아예 언니 앞에 가서 넉 놓고 바라보곤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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