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바람새(음악한곡의추억)

빗속을 둘이서 중화사 2001/6/24(일) 20:56

  • -

빗속을 둘이서

중화사

2001/6/24(일) 20:56


기나긴 장마의 끝을 마감하는 비인지라 반갑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리창이 깜깜하여 보이지도 않고, 밀폐된 공간이라 소리도 없지만
저 밖에 비가 온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더 없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지금은 거대한 댐이 되어 수몰되었다 하는데....
내가 중학 시절, 대구 시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 두어시간 달리면
동화천이라는 아담한 못을 찾을 수 있었다.
여름에는 몰라도, 겨울은 대구 근교에서는 명소 중의 명소였는데
그 동화천이 바로 스케이트장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스케이트 주머니를 들고 콩나물 시루같은 시외버스를 내리면,
얼음속에 밖힌 말뚝위에 서있는 허름한 휴게실의 돔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 떨어질듯 메달린, 소음 잔뜩한 앰프에서는
늘 뮤직박스에서 띄우는 대중가요가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당시 동화천을 추억하면 가장 많이 나왔던 노래가
바로 금과 은의 '빗속을 둘이서'인 것이다.

얼마전 작고하신 원로 벙어리 화백의 생전, 노익장에 찬 일성 중에는
세월이 성난 계류와도 같다는 현실감 생생한 정의가 있었다.
심산유곡의 물은 비가 오기가 무섭게 엄청나게 불어나 황토빛 급류가 된다. 
그러나 또한 비가 그치기 무섭게 말라버리는 다혈질의 습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인생이 바로 그런 것이란다.

물 불은 계곡의 급류처럼 천지를 삼킬듯 삶을 굽이쳐 돌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깡마른 흙으로 되돌아 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가  피할 수 없이 운명으로 가두어진 까투리인 것이다. 

우리는 간혹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조차도 지겹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왜 이리도 가지 않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이는 수도 많다.
따지고 보면 참 어리석기 그지 없는 발상이다.

우리의 살아있다는 이 삶의 급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매말라 버릴텐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동화천 얼음가루를 맞으며 얼음을 지치던 것도,
걸핏하면 바늘이 튀는 금과 은의 '빗속을 둘이서'를 듣던 시절도
바로 엊그제 같지 않은가?

세월을 아끼라는 격언은 우리 삶을 너무도 적절히 교훈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주어진 하루 하루, 내게 부여된 일각 일각이
그렇게 중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언젠가는 다가올,
내가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임종의 자리에서
이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면 얼마나 짧고 허망한 인생의 순간이겠는가 말이다!
하루는 24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이다.
한 달은 30일이나 되는 긴 기간이다.
게다가 일 년은 365일이나 있는 길고 긴 세월이다.
그러나 한 생은 너무도 짧기만 한 것이 우리 인생의 아이러니인 것이다.

그러니 주어진 시간을 지겹게 느끼지만은 말아야 한다.
내 생의 말로에서 되돌아 보면, 지금 바로 이 때가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일테니까 말이다.

세월을 아끼는 자에게는 그래서
인생은 길지도 짧지도 않는 것이다.
다만 살기에 가장 적합한 기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더 없이 무료하고 따분한 휴일이라 느껴졌다.
'빗속을 둘이서'는 머나먼 과거의 한 시점이었던 동화천을 기억케 함으로써
나의 어리석음을 잔잔히 일깨워 준다. 

빗속을 둘이서........!

 

===============================

강남주  2001/06/25[09:28] 
 중화사님,내리는 빗방울 하나에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시다니요?...
지상에서의 평범한 하루가 ,천국에서의 행복한 하루와 같다는 누군가의 
말도 떠 올려보고 시간 죽이지 말아야겠어요.
에이츠는 '우리들의 슬픈 영혼은 이제 지치고 피곤하다'고 했지만
바람새님이 올려준 음악과 여러 님들의 따스한 글을 보면서 아름답게 영
혼을 다독거려가야겠어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여상화  2001/06/25[10:27] 
 노래...선하고자 그리고 행복하고자 바라는 인간의 마지막 소리. 
詩에서 일어나서 禮에 서며 음악에서 완성된다는 말처럼, 그래서 음악이란 최상에 놓일 수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음악은 천사의 말! 천사의 말이 가득한 바람새방.
주신 글 봤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중화사님. 
 

낸시  2001/06/25[11:18] 
 빗속을 둘이서 
너의 마음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고개들어 나를 보고 살며시 얘기하렴
정녕 말을 못 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다면 
오고 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전해 주렴
이 빗속을 걸어 갈까요
둘이서 말 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나나나나---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요 소중히 쓸께요
김정호 작사/작곡
 
조원주  2001/06/25[16:46] 
 1990년에 발매된 김정호 추모앨범 중에 '빗속을 둘이서'라는 노래가 있었지요. 편곡은 김명곤님께서 해주셨고 노래는 한마음 - 유하영과 강영철 - 이 불러주었는데... 저도 이 노래와 얽힌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물건너가버린 추억이지만 20대 중반에 짝사랑하던 여자와 신림동에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마치고 빗속을 둘이서 각자 우산을 쓰고 왔던 추억이 있습니다. 거두절미하더라도 정말 좋은 노래입니다.... 
 

이현숙  2001/06/27[03:50] 
 추억이란 언제나 아름답지요 
 

이영복  2001/06/28[20:44] 
 지금도 한 잔하면  
 

김종륙  2001/07/01[21:48] 
 그여름에는 

 

 

 

Contents

포스팅 주소를 복사했습니다